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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
대장정 지도 및 일정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자

대학생 국토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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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일정 및 지도| 건강한 젊음과 박카스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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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경주, 1~2일차

경주 - 세계유산, 불국사, 안압지, 감포 해국길, 체리, 찰보리빵, 황남빵, 보문단지 벚꽃축제

경주 석굴암 석굴 /국보 제24호
불신라인의 믿음과 슬기로 만들어진 찬란한 문화의 금자탑

위치 - 경북 경주시 불국로 873-243,석굴암 (진현동)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당시 대상이였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수리,기하학,종교,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주 첨성대 / 국보 제31호
구조학적 안정성과 조화된 곡선미의 백미의 ‘첨성대‘

위치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번지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첨성대는 일제강점기까지도 천문관측을 하는 곳으로 이해되었다.그런데 광복 이후에 갑자기 이에 대한 이설이 제기되며,제단·기념물·불교관계 건축물 등의 여러 가지 설과 이견이 속출되었다.이런 설에 대하여 종전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천문대로 해석하는 연구도 물론 진행되었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주 불국사 /사적 제502호
신라 문화의 높은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

위치 ­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등 (진현동)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자하문,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 칠보교가 국보로 지정,보존되어 있다.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주 무열왕릉 /사적 제20호
신라에서 주인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

위치 ­ 경북 경주시 서약동 842번지

신라 제29대 무열왕(재위 654∼661)의 무덤으로 경주 시가지 서쪽의 선도산 동쪽 구릉에 있는 5기의 큰 무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다.

무열왕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본명은 김춘추이다.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위에 오른지 8년만인 661년 6월에 죽어,죽은 왕에게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경사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한다.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았으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된다.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장식이 소박한 편으로 무덤 주위에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돌렸다.무덤 앞 동북쪽에는 경주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다.

무열왕릉은 신라의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가치가 있으며 1972∼1973년에 주변을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영천, 3일차

영천 - 포은 정몽주 생가, 살구, 복숭아, 포도, 최무선, 운주승마자연휴양림, 보현산 천문대, 별빛마을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 / 보물 제465호
통일신라 시대의 수법을 잃지 않은 아름다운 석탑!

위치 ­ 경북 영천시 금호읍 금호로 360-29, 신흥사 (신월리)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탑이 세워질 당시의 절의 이름이나 규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최근 이 터에 법당을 짓고 신흥사(新興寺)라 이름지어 탑을 보존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基壇)을 2층으로 마련하고,그 위로 기와집 모양의 탑신(塔身)을 3층으로 쌓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기단은 위 아래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 부분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으며,위층 기단 각 면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8부중상이란 불법을 지키는 여덟신의 모습으로 석탑에서는 주로 기단에 새기는데,탑신에 모셔진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사용하였으며,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1층 몸돌에는 4면 모두 문짝 모양의 조각을 새기고 각각 그 안에 자물쇠와 문고리 모양의 조각을 표현해 놓았다.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모두 4단으로 새겼고, 처마선은 수평을 이루나 두꺼워 보인다.지붕돌 경사면의 네 귀퉁이는 이러한 두터운 지붕돌에 비해 아주 경쾌하게 위로 치켜올려져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국보 제14호
고려말,조선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영산전!

위치 ­ 경북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은해사 거조암(신원리)

은해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혜철국사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라 하였다고 하며 여러 차례 있었던 화재로 많은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지금 있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근래에 세운 것들이다.

거조사는 은해사 보다 먼저 지었지만,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영산전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다.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으며,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앞면 7칸·옆면 3칸 크기의 규모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특히 영산전은 고려말·조선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군위, 4일차

군위 - 한밤마을 돌담길, 삼국유사, 인각사, 가시오이, 자두, 대추, 소원 들어주는 나무, 화본역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국보 제109호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

위치 ­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1477번지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 /보물 제682호
조각 수법이 화려하고 외양이 단전한 고려 전기의 우수 작품

위치 ­ 경북 군위군 군위읍 상곡길 233(상곡리)

지보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다.

기단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기단의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고,기둥 사이에는 무늬를 새겼는데,아래층에는 사자 모양의 동물상을,위층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넣었다.기단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모두 높아서 다소 우뚝해 보인다.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판돌을 삽입하여 윗돌을 괴도록 하였다.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지붕돌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한 것으로,밑면에 새겨둔 4단의 받침이 두꺼워 보인다.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많이 깎여나가고 훼손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느끼게 하지만,조각 수법이 화려하고 외양이 단정한 고려 전기의 우수한 작품이다.

출처 - 문화재청

군위 인각사지
사적 제374호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

위치 ­ 경북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외 (화북리)

군위군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지리잡은 절터이다.

인각사는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세운 절이라 한다.그 뒤 고려 때에 크게 고쳐 지었고,일연이 충렬왕 10년(1284)부터 5년간 이 절에서 머물며 『삼국유사』를 지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각사는 언제 세워졌는지 문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그러나 발굴 조사 때 대웅전터로 생각되는 건물이 있던 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를 확인하여,신라 후기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의 인각사에는 법당과 두 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중요문화재로 인각사 보각국사 탑과 비(보물 제428호)가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상주, 5~8일차

상주 - 경천대, 문장대,견훤산성, 삼백중명주, 자전거 박물관, 삼백 중 곶감, 삼백 중 쌀, 도남서원

상주 상산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조선시대 궐패를 모시고 사신들이 머물던 남부지방 최대 규모 객사

위치 ­ 경북 상주시 만산동 산73-1번지

조선시대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며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이 머무르던 상주목의 객사이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 중종 21년(1526)에 화재를 입어 고쳐지었다.그러나 임진왜란 때 또다시 불타 선조 39년(1606)에 다시 세웠다.원래의 위치는 지금의 동성동 상주경찰서 자리였으나 1940년에 옮겨져 상주여자중학교의 교실로 사용되었다.그 후 다시 만산동으로 옮겨졌다.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서익헌이 붙어 있다.본관은 앞면 3칸·옆면 3칸이고,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동익헌은 앞면 7칸·옆면 3칸으로 본관쪽 지붕은 본관과 같은 맞배지붕이고 동쪽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서익헌은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동익헌과 같이 본관쪽은 맞배지붕이고,서쪽은 팔작지붕이다.

상주 상산관은 현존하는 건물로는 남부지방 최대의 규모이다.

출처 - 문화재청

상주 임란 북천전적지 /경상북도 기념물 제77호
임진왜란 왜군에 맞서 싸워 대항하여 격전을 벌인 전적지

위치 ­ 경북 상주시 만산동 702-1번지 12필

임진왜란(1592)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8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성지이다.선조 25년(1592) 일본군 주력 부대인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끄는17,000명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침공해 왔다.이에 싸움도 하기 전에 순변사 이일은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으나,상주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종사관인 윤섬,이경류,박호 등의 경군과 사근도 찰방 김종무,의병장 김준신 등은 800여 사병과 함께 죽기로 맹세하고 역전분투하였으나 호국의 영령으로 산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선조는 상주전역에 복호(復戶,부역의 면제)를 내려 상주는 왕의 은전(恩典)을 입은 유일한 지방이기도 하다.1990년부터는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상산관,태평루 등 산재한 문화재도 이곳으로 옮겨와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조성하였으며 북천전투에서 전사한 종사관 윤섬,박호,이경류 3충신과,의병장 김준신,김일의 2의사와 상주판관 권길,호장 박걸,사근도찰방 김종무,순국무명열사의 9위의 위패가 충렬사에 봉안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상주 견훤사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7호
후백제 견훤 왕과 그의 제례에 관련되어 있는 문화재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315-11

견훤사당은 간소한 건물이지만,청계마을의 민속인 동제의 제장으로서 늦어도 19세기 전반에는 창건된 사당이다.유형 무형의 민속신앙인 동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민속신앙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다.더구나 비록 변화를 겪긴 했지만,인근에 전승되는 견훤관련 설화와 결합되어 후백제대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작은 건물로 매우 간결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어서 건축 구성상의 특이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사당으로 서는 드물게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건립 초기의 구성이 현재까지 잘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나름의 의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또 견훤사당은 후백제 견훤 왕과 그의 제례에 관련되어 있는 만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출처 - 독립기념관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단양 9~11일차

단양 - 고수동굴, 도담상봉, 마늘, 쏘가리, 옥순봉, 패러글라이딩, 시멘트, 온달관광지

단양 신라 적성비 /국보 제198호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적성을 점령 후 민심안정을 위해 세운 비석

위치 ­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번지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비문에는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이를 통해 신라의 형벌 및 행정에 대한 법규인 율령제도 발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노역체제,재산 분배에 관한 국법이 진흥왕 초반에 마련된 것과 적성 지방에 국한된 관습을 법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사실 등이 그러하다.

비문 첫머리에 언급된 고관 10인의 관등과『삼국사기』의 내용을 견주어 살펴볼 때,비의 건립은 진흥왕 6∼11년(545∼550)사이였을 것으로 보인다.북방공략의 전략적 요충지인 적성지역에 이 비를 세웠다는 것은 새 영토에 대한 확인과 함께 새로 복속된 고구려인들을 흡수하려는 국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비록 순수비는 아니지만, 순수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척경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출처 - 문화재청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보물 제405호
통일신라시대의 단정한 탑의 조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

위치 ­ 충북 단양군 가곡면 향산1길 24(향산리)

단양읍에서 동쪽으로 16㎞ 떨어진 산골짜기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탑이다.주변에 자기조각들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 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나,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1935년경탑 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졌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장의 길고 큰 돌로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쌓은 모습이며,각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석탑의 형태가 우수하고 비례도 충실하며,조각수법에서도 통일신라 시대 석탑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단정한 탑의 조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단양 온달산성 /사적 제264호
온달장수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온달산성!

위치 ­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67번지

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온달 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성 안에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성의 북동쪽 남한강의 강변 절벽 아래에는 온달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성을 바라보는 북쪽 강 건너의 산에도 온달과 관계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성벽의 보존 상태가 좋아,축성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문화재청

단양 도담상봉 /명승 제44호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상봉!

위치 ­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번지

단양 도담삼봉(丹陽 島潭三峰)은 절경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양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하여 황준량,홍이상,김정희,김홍도,이방운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정도전 탄생에 관련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도담삼봉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원추 모양의 봉우리로 남한강이 휘돌아 이룬 깊은 못에 크고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형상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남한강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제천, 12~13일차

제천 - 청풍호, 박달재, 의림지, 월악산, 막국수, 백운산 자연 휴양림, 토정 이지함, 청풍문화재단지

제천 청풍 한벽루 /보물 제528호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

위치 ­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읍리)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올려지자,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구조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건물 안에는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남원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제천 의림지와 제림 /명승 제20호
주변 정자 및 누각과 전통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진 경승지!

위치 ­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와 그 제방 위의 제림(堤林)그리고 주변의 정자 및 누각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역사적 경승지이다.

제림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으로 의림지와 역사를 같이 하고 있으며,현재에는 아름다운 노송이 주종을 이루고 버드나무,전나무,은행나무,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명승지로 주변의 영호정(映湖亭),경호루(鏡湖樓)등 정자 및 누각과 연자암,용바위,홍류동,홍류정지등 전통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제천 옥순봉 /명승 제48호
여러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다수 전하는 절경지!

위치 ­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산9번지

제천 옥순봉(堤川 玉荀峰)은 ‘비가 갠 후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죽순이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전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강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가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옥순봉은 본래 제천(당시 청풍)땅인데 이곳이 단양팔경에 속하게 된 것은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였던 이황이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풍부사에게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자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면서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인근의 구담봉과 함께 여러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다수 전하는 절경지이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원주, 14~15일차

원주 - 박경리 문학의 집, 송이버섯, 치악산 복숭아, 치악산, 레일바이크, 한지, 허브팜, 올칠기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 보물 제464호
기단과 탑신의 불균형이 눈에 띄는 석탑

위치 -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번지

흥법사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던 거대한 사찰로, 원래 탑 외에도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등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基壇)을 2단으로 두고, 그 위로 기와집 모습을 본 뜬 듯한 탑신(塔身)을 3층으로 쌓아올린 모습이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겨놓았으며, 1층 몸돌에는 네모난 문비가 새겨져 있고 문비 안에는 마멸이 심한 문고리 장식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두꺼워 보이고 경사가 가파르며, 아래받침은 얇게 4단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파손된 부분이 많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가에서 살짝 위로 들려있어 고려시대 석탑임을 잘 드러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머리장식을 받치기 위한 노반(露盤)만 남아 있으나 그 마저도 많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단과 탑신의 불균형이 눈에 띄며, 돌의 구성이나 조각수법이 소박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원주 거돈사지 / 사적 제168호
신라말 고려초의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만한 절터

위치 -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9번지

현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 펼쳐진 곳에 있는 절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중문터, 탑,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는데,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2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문지 북쪽의 3층석탑(보물 제750호)은 처음 세워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종(930∼1018)을 위한 원공국사 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있는데, 1025년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라 불리는 부도가 있었는데 현재는 경복궁 뜰 안에 옮겨 놓았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이었지만,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하면서 천태종 사찰로 흡수되었다.

거돈사는 신라말 고려초의 절터로서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이천, 16~17일차

이천 - 서희, 설봉산성, 장호원 황도, 쌀, 열기구 투어, 이천 도자기 축제, 산수유 마을, 온천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 보물 제822호
스님의 얼굴에 어울리는 은은한 덕만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마애조사상

위치 - 경기 이천시 관고동 산64-1번지

높이 7∼8m의 자연 암석을 다듬고 바위면 전체에 꽉 채워 조각한 마애불로 전체적으로 장대하며 힘찬 솜씨를 보이고 있어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와 양 손은 얕은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고 옷주름 등은 선으로 조각되었다.원만하고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하며 지그시 감은 듯한 눈과 굵직한 코,두터운 입술 등에서 힘차고 후덕한 고승의 느낌을 갖게 한다.양손은 가슴에 모아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으며,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있는 설법하는 모양이다.왼쪽 어깨를 감싼 옷은 부드러운 사선을 그리며 흐르고,끝에서는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무리되어 있다.옷주름선은 소박한 모습이며,스님의 얼굴에 어울리는 은은한 덕망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영월암의 창건조사 혹은 이 사찰과 인연이 깊은 나한이나 고승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며 유례가 드문 고려시대 마애조 사상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작품이다.

출처 - 문화재청

이천 향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2호
교육기능과 제사기능을 동시에 가진 교육기관!

위치 ­ 경기 이천시 창전동 336번지

이천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01)에 처음 지었으나,지금 있는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수리한 것이다.특히 동무는 1967년,서무는 1980년에 새로 지었고 1991년과 1993년에는 명륜당과 담장을 수리하였다.

전학후묘의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반의 규모로,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부리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이다.대성전 내부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 앞쪽 좌우에 있는 동무와 서무는 각각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의 맞배지붕으로,형태와 구조가 서로 비슷하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주변 지형의 구조를 적절히 이용한 배치가 돋보이는 조선 후기 향교이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서울, 18~21일차

서울 - 서울N타워, 석촌호수, 인사동 쌈짓길, 종묘, 청계천, 북촌 한옥 마을, 광화문 광장, 올림픽 공원

서울 종묘 / 사적 제125호
조선시대 왕과 왕비를 모시던 곳

위치 - 서울 종로구 종로 157(훈정동)

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종묘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태조 3년(1394)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에 완성되었다.태조는 4대(목조,익조,도조,환조)의 추존왕을 정전에 모셨으나,세종 때 정종이 죽자 모셔둘 정전이 없어 중국 송나라 제도를 따라 세종 3년(1421)영녕전을 세워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

종묘는 동시대 단일 목조건축물 중 연건평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나,장식적이지 않고 유교의 검소함이 깃든 건축물이다.중국의 종묘가 9칸인데 비해 19칸의 긴 정면과 수평성이 강조된 건물 모습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며,동양 고대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가 담긴 유산이다.종묘의 정전과 영정전 및 주변 환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종묘제례와 음악· 춤의 원형이 잘 계승되어,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서울 숭례문 /국보 제1호
서울의 남쪽 문

위치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남대문로4가)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5년(1396)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이 건물은 세종 30년(1448)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이후,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화재로 누각 2층 지붕이 붕괴되고 1층 지붕도 일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5년 2개월에 걸친 복원공사 끝에 2013년 5월 4일 준공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비경과 풍유가 흐르던 남촌

위치 ­ 서울 중구 퇴계로34길 28

조선시대의 한옥 다섯 채를 이전해 조성한 남산골 한옥마을이다.이곳에서는 어슬렁어슬렁,양반의 팔자걸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여전히 주거 역할에 충실한 북촌과 달리 사람이 살지 않아 민속촌의 느낌도 약간 묻어난다.

먼 발치의 남산과 N서울타워 아래 한옥촌을 휘감은 너른 자연은 절로 한자락의 풍류를 부른다.예부터 학이 날아드는 '청학(靑鶴)동'이라 불렸을 정도로 풍경이 좋은 마을이다.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다.조선시대 청계천 북쪽의 북촌에는 권력 있는 양반이 살았고,남쪽의 필동 일대에는 권세와는 무관한 양반들이 뿌리를 내렸다.그래서 북촌에는 떡이 맛있고 남촌에는 술이 향기롭다 했다.당파 세력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너른 자연을 보니 술과 풍류를 즐긴 남촌 선비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남산골 한옥마을은 그 정취도 충실하게 재현했다.골짜기를 만들어 물이 흐르게 하고 전통 조경을 되살렸다.마을 최고 상단의 망북루부터 청류정,관어정까지 길목마다 자리한 정자도 전통미를 더한다.그 너머로 남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 한층 운치 있다.한옥촌이 전부라 생각하지만 정작 그 자연의 풍유 또한 진정 남촌답다.

출처 -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 웹사이트

서울 남산타워
오감을 만족시키는 복합 문화 공간

위치 ­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길 105

남산타워는 방송 송출 전파 탑으로 1975년 탄생했지만 1980년부터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돼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로 사랑 받아왔다.시간이 흘러 남산타워는 조금은 촌스런 데이트 코스로 진부해지는 듯했지만 2005년 12월 9일 N서울타워라는 이름으로 새롭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N서울타워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큼지막한 'N'자 로고.남산(namsan)의 N과 함께 'New''Nature'의 의미를 담았다.

특히 새롭게 태어난 N서울타워의 하이라이트는 야간 조명 쇼.매일 오후 7시부터 밤 12시까지 타워 전신은 매 정시마다 다른 색으로 빛을 갈아입는다.'서울의 꽃'이란 테마로 꽃이 피는 모습을 빛으로 형상화한 것.타워 전체를 송신탑,전망층,전신,플라자층 등 네 구간으로 나눠 각기 다른 빛을 연출하는데 계절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빛의 색깔과 패턴도 바뀐다.타워뿐 아니라 타워 주변 곳곳에서도 화려한 조명을 즐길 수 있다.

출처 -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