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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국토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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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일정 및 지도| 건강한 젊음과 박카스가 함께합니다.

home>제21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대장정 지도 및 일정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평창, 1~2일차

평창 - 동강, 메밀꽃, 백일홍, 양떼목장, 메론, 대관령 눈꽃축제, 송어축제, 동계 올림픽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 국보 제48호
고려 전기 송나라의 영향을 받은 다각 다층의 석탑

위치 -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월정사 (동산리)

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 다층 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상원사 동종 / 국보 제36호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

위치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50(동산리) 상원사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연곽(蓮廓)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연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연뢰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항아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갖춘 모본이 되는 종이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효석 문화 예술촌
이효석의 단편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

위치 - 강원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작품 속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만났던 장소인 물레방앗간과 이효석 생가가 보존되어 있으며, 봉평 장터의 충주집 자리에는 그곳을 기념하는 작은 비석이 서 있다. 이효석기념관과 메밀향토자료관이 건립 추진 중이다.

마을은 해마다 9월이면 메밀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며, 이효석을 기념하는 백일장이 열린다. 이효석은 1907년 봉평에서 출생하여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초기에는 경향성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수탉)을 계기로 (돈) 등 향토적이며 서정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화분)과 (장미병들다) 등의 작품으로 자연과 인간의 본능을 시적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1936년에 발표한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단편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제천, 3~4일차

제천 - 청풍호, 박달재, 의림지, 월악산, 막국수, 백운산 자연 휴양림, 토정 이지함, 청풍 문화재단지

제천 청풍 한벽루 / 보물 제528호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

위치 -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읍리)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올려지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구조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 건물 안에는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제천 의림지와 제림 / 명승 제20호
주변 정자 및 누각과 전통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진 경승지!

위치 -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와 그 제방 위의 제림(堤林) 그리고 주변의 정자 및 누각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역사적 경승지이다.

제림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으로 의림지와 역사를 같이 하고 있으며, 현재에는 아름다운 노송이 주종을 이루고 버드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명승지로 주변의 영호정(映湖亭), 경호루(鏡湖樓) 등 정자 및 누각과 연자암, 용바위, 홍류동, 홍류정지 등 전통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제천 옥순봉 / 명승 제48호
여러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다수 전하는 절경지!

위치 -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산9번지

제천 옥순봉(堤川 玉荀峰)은 ‘비가 갠 후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죽순이 돋아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전하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강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가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옥순봉은 본래 제천(당시 청풍) 땅인데 이곳이 단양팔경에 속하게 된 것은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였던 이황이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 달라고 청풍부사에게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자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면서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인근의 구담봉과 함께 여러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다수 전하는 절경지이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문경, 5일차

문경 - 석탄박물관, 주흘산, 옛길박물관, 오미자, 봄배추, 대야산 용추계곡, 문경새재, 사과

문경 조령 관문 / 사적 147호
문경 새재 내에 위치한 조선시대 관문

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555번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이다. 이곳은 고려 초부터 조령이라 불리면서 중요한 교통로로 자리잡았다.

조선 선조 2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시의 군사와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조령에서 왜군을 막지 못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왜병을 맞서 싸우다가 패하고 말았다.

그 뒤 조정에서는 이 실책을 크게 후회해 조령에 대대적으로 관문을 설치할 것을 꾸준히 논의하다가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개의 관문을 완성했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 제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한다.

숙종 34년(1708)에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옛 성을 고쳐 쌓고, 중성을 삼아 관문을 조곡관이라 했다. 현재의 시설은 페허가 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경 봉암사 극락전/ 사적 147호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원북리)

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555번지

문경 봉암사 극락전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시 원당으로 사용한 유서 깊은 건물로 전하고, 현재 극락전 내부에는 어필각(御筆閣)이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옥개보수가 있은 듯 망와에 소화16년(1941년)이란 기록이 남아 있다.

봉암사에서 극락전은 가장 오래되고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전각이다. 그 형태나 위치로 보아 조선 중후기에 세워진 왕실 원당일 가능성이 높으며, 기단과 초석은 고려조의 것으로 볼 수 있다.

높은 단층 몸체에 차양칸을 둘러 마치 중층건물 같은 외관을 구성했고, 몸체와 채양칸의 기둥열을 다르게 한 독특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독특한 외관과 건축수법 및 단청에서 조선 중·후기의 건축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경새재 / 명승 제32호
한양을 향하는 옛길, 아름다운 문경새재

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1156, 등 (상초리)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의 역할을 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도로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또한 문경새재가 위치한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수림터널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경관 가치가 뛰어나며, 문경시의 ‘옛길 걷기 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출처 - 문화재청,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상주, 5~8일차

상주 - 경천대, 문장대, 견훤산성, 삼백중명주, 자전거 박물관, 삼백 중 곶감, 삼백 중 쌀, 도남서원

상주 상산관 / 경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조선시대 궐패를 모시고 사신들이 머물던 남부지방 최대 규모 객사

위치 ­ 경북 상주시 만산동 산73-1번지

조선시대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며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이 머무르던 상주목의 객사이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 중종 21년(1526)에 화재를 입어 고쳐지었다.그러나 임진왜란 때 또다시 불타 선조 39년(1606)에 다시 세웠다.원래의 위치는 지금의 동성동 상주경찰서 자리였으나 1940년에 옮겨져 상주여자중학교의 교실로 사용되었다.그 후 다시 만산동으로 옮겨졌다.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서익헌이 붙어 있다.본관은 앞면 3칸·옆면 3칸이고,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동익헌은 앞면 7칸·옆면 3칸으로 본관쪽 지붕은 본관과 같은 맞배지붕이고 동쪽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서익헌은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동익헌과 같이 본관쪽은 맞배지붕이고,서쪽은 팔작지붕이다.

상주 상산관은 현존하는 건물로는 남부지방 최대의 규모이다.

출처 - 문화재청

상주 임란 북천전적지 /경상북도 기념물 제77호
임진왜란 왜군에 맞서 싸워 대항하여 격전을 벌인 전적지

위치 ­ 경북 상주시 만산동 702-1번지 12필

임진왜란(1592)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8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성지이다.선조 25년(1592) 일본군 주력 부대인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끄는17,000명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침공해 왔다.이에 싸움도 하기 전에 순변사 이일은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으나,상주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종사관인 윤섬,이경류,박호 등의 경군과 사근도 찰방 김종무,의병장 김준신 등은 800여 사병과 함께 죽기로 맹세하고 역전분투하였으나 호국의 영령으로 산화되었다.

이로 인하여 선조는 상주전역에 복호(復戶,부역의 면제)를 내려 상주는 왕의 은전(恩典)을 입은 유일한 지방이기도 하다.1990년부터는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상산관,태평루 등 산재한 문화재도 이곳으로 옮겨와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조성하였으며 북천전투에서 전사한 종사관 윤섬,박호,이경류 3충신과,의병장 김준신,김일의 2의사와 상주판관 권길,호장 박걸,사근도찰방 김종무,순국무명열사의 9위의 위패가 충렬사에 봉안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상주 견훤사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7호
후백제 견훤 왕과 그의 제례에 관련되어 있는 문화재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315-11

견훤사당은 간소한 건물이지만,청계마을의 민속인 동제의 제장으로서 늦어도 19세기 전반에는 창건된 사당이다.유형 무형의 민속신앙인 동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민속신앙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다.더구나 비록 변화를 겪긴 했지만,인근에 전승되는 견훤관련 설화와 결합되어 후백제대왕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작은 건물로 매우 간결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어서 건축 구성상의 특이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사당으로 서는 드물게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건립 초기의 구성이 현재까지 잘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나름의 의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또 견훤사당은 후백제 견훤 왕과 그의 제례에 관련되어 있는 만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출처 - 독립기념관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김천 9~11일차

김천 - 자두, 세계 도자기 박물관, 호두, 직지문화공원, 녹색미래과학관, 포도, 연화지, 참외

김천 직지사 대웅전, 문화공원
짜임새 있는 규모와 화려한 모습 등 뛰어난 건축미를 보여주는 조선의 건물

위치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직지사는 418년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절의 이름은 아도화상이 절터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는 뜻에서 직지사라 부른다.

직지사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그 모습이 화려하다.

내부에는 원래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나 이곳에는 약사·석가·아미타불의 세 불상을 모시고 있다. 또한 영조 20년(1744)에 만들어진 불화도 있는데 6m나 되는 비단 위에 그려졌다. 이 불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왼쪽은 약사불화, 가운데에는 석가후불탱화, 오른쪽은 아미타탱화가 있다.

모두 짜임새 있는 구성과 불·보살상의 뛰어난 묘사, 안정감 있는 색깔, 정교한 장식표현 등이 조선시대 후기 불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김천 모성정 / 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학자이자 효자로 소문난 이장원의 충효의 시가 있는 정자

위치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산17

모성정은 이장원(1560~1649)을 기리기 위해 바위 위에 세운 정자다. 주변에는 비석군과 함께 바위에 음각된 글씨가 여기저기 숱하다.

모성정에서 내려다본 4가지 풍경이 전해진다. ‘물결처럼 보이는 자욱한 안개’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 ‘낮게 드리운 저녁놀’ ‘나뭇가지 흔드는 솔바람’이 그것인데 그 자체로 시 한 수씩이다.

지금은 풍광이 다소 변했겠지만 뒷산과 앞을 흐르는 내, 한가로운 전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로 초당 이장원은 이곳에서 글을 읽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거창, 11~13일차

거창 - 덕유산, 건계정, 사과, 월성계곡, 거청애우, 포도, 딸기, 황산한옥마을

거창 용암정 일원 / 명승 제88호
수려한 자연경관과 역사,문화,환경이 복합된 자연유산

위치 -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0 일원

덕유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위천(渭川)의 계곡가에 세워진 용암정을 중심으로 펼쳐진 명승지이다. 월성계곡 아래쪽에 있는 위천의 맑은 물과 소(沼), 숲, 암반, 갖가지 모양의 바위 등이 정자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에 안의현에 속하던 곳으로 영남 제일의 명승으로 꼽혔던 안의삼동(安義三洞)에 해당되었다. 안의삼동이란 안의현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났던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을 일컫는 말이다. 용암정 일대는 원학동의 일부였던 곳으로, 정자 앞으로 흐르는 위천은 원학동 계곡이라 불렸다. 1801년(순조 1) 벼슬에 뜻을 두지 않는 가풍을 이어받아 출사를 하지 않고 안빈낙도하며 지내던 용암 임석형이 이곳 바위 위에 용암정을 세우고 별서로 삼았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역사·문화 환경이 복합된 자연유산으로서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출처 - 문화재청

대동여지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5호
조선시대의 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하고 정확한 세밀도

위치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창박물관

조선후기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가 순조 34년(1834)에 자신이 만든 <청구도>를 27년 후에 증보 수정한 대축척 지도로 분첩절첩식지도첩이다. 형태를 보면,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끊어 19판으로 구분했음.

동서방향은 구획된 판을 접어서 연결시켜 1첩으로 만들어 쉽게 볼 수 있도록 했음. 남북으로 동서의 방향을 연결시킨 각 첩을 펼쳐서 순서대로 이어대면 연속된 남북을 볼 수 있게 했음. 지도의 제 1층에는 지도의 제목과 발간연도 및 발간자를 명시하고 본도와는 별도로 서울의 도성도와 경조오부도를 상세하게 그렸음. 축척을 보면, 지도의 제 1층 첫머리에 그려져 있는 지도 방안에 매방십리라고 되어 있어서 간접적으로 축척이 표시되어 있음.

1861년에 처음으로 만들어 김정호가 목판으로 인쇄하였으며, 그 후 고종 원년(1864)에 수정본이 재간되었음. 박물관의 소장본은 1864년도 재간본으로 박물관 2층 중앙에 전시되어 있음.

출처 - 문화재청

거창 수승대 / 명승 제53호

위치 -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

수승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쳤던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인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위치하는 화강암 암반으로 깊고 긴 계곡과 주변 임야와 어우러져 탁월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수승대’ 명칭과 관련하여 퇴계 이황의 개명시와 갈천 임훈의 화답시가 전하고, 수승대 양쪽에 위치하는 요수정과 관수루 등이 잘 남아 있어 요산요수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결합된 장소적 상징성이 큰 명승지이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함양, 14~15일차

함양 - 오미자, 서암정사, 양파, 곶감, 용추폭포, 산삼, 여주, 대봉철쭉

함양 용추사 / 국보 제 10호
일주문으로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대단히 큰 규모의 문

위치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덕유산에 있는 용추사는 원래 신라 소지왕 9년(487) 각연대사가 지은 장수사에 속해있던 암자이다. 장수사는 한국전쟁 때 불타 버리고 문만 남아있다가 1975년에 복원되었다.

용추사 일주문은 2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지탱하는 건물이며, 조선 숙종 28년(1702) 호남사혜가 세웠다고 한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갈 때 제일 먼저 통과하는 문으로, 속세와 불계의 경계역할을 하는 의식적인 상징물이다.

약 3m 정도의 둘레와 높이를 갖는 굵은 원기둥을 4m 정도의 간격으로 세운 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을 올렸다. 다포계 건물로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하는 공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현판은 남쪽으로 향한 정면에만 있는데, ‘덕유산장수사조계문(德裕山長水寺曹溪門)’이라 새겨져 있다.

용추사 일주문은 일주문으로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큰 규모의 문이다.

출처 - 문화재청

함양 용추폭포(용추비경) / 명승 제85호
일주문으로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대단히 큰 규모의 문

위치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산 16-4 번지

용추비경은 용추계곡과 기백산의 경치를 이르는 이름이다. 기백산은 함양군과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일면 지우산이라고도 불린다.

기백산을 오르는 등산코스에는 용추사, 용추계곡, 용추폭포 등이 있으며, 3km정도 달하는 억새 풀밭이 장관이다. 용추계곡은 ‘심진동’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 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용추계곡 주변에는 용추사(사찰)과 자연휴양림이 있어 여행가기에 좋다.

용추폭포는 2단 폭포로, 다른 폭포처럼 물이 높은 위치에서 시원스레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위쪽에 하트 모양의 깊게 파인 소(沼)가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이 곳은 두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으로 폭포 양쪽의 바위에는 용이 승천할 때 떨어뜨렸다고 전하는 용의 비늘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남원, 16~18일차

남원 - 남원 실상사, 남원 허브밸리, 포도, 파프리카, 춘향 테마파크, 광한루, 시설감자, 복숭아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 국보 제 10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구조로 설계되어진 통일신라 대표 석탑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5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얼마쯤 가다보면 백장암이 나타나는데, 실상사에 딸린 소박한 암자로, 그 아래 경작지에 이 탑이 세워져 있다.

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난다.

기단과 탑신괴임에는 난간모양을 새겨 멋을 내었고,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남원 광한루 / 보물 제281호
춘향전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75번지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자연과 어우러져 쉴 수 있도록 경치 좋은 곳에 지은 건물을 말한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4면 모두 문을 달아 놓았는데, 여름에는 사방이 트이게끔 안쪽으로 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누의 동쪽에 있는 앞면 2칸·옆면 1칸의 부속건물은 주위로 툇마루와 난간을 둘렀고 안쪽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뒷면 가운데 칸에 있는 계단은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남원 교룡산성 / 시도기념물 제9호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 16-1번지

남원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의 천연적인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3120m이다.

현재 무지개 모양으로 입구가 표현된 동문과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작은 성인 옹성, 그리고 군데군데 성벽이 남아 있다. 온전하게 남은 동문터와 수문에 보이는 성벽의 구조는 우리나라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안에는 우물 99개와 계곡이 있어서 산성 주변의 주민들이 유사시에 대피나 전투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좋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전기에는 군대의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

산성을 언제 쌓았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성을 쌓은 입지나 형식으로 볼 때 백제 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행복여행,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광주, 19~20일차

광주 - 무등산 입석대, 광주 국립 박물관, 상추튀김, 토마토, 송정떡갈비, 의재미술관, 가지, 광주호 호수 생태원

광주 환벽당 일원 / 명승 제107호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 누청문화를 보여주는 곳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0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출처 - 문화재청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 / 보물 제110호
광주 전남지방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우수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

위치 - 광주 동구 지산2동 448-4번지

광주시내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2기의 탑 가운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탑이 서있는 부근은 백주사(栢州寺)터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추정할 만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탑의 구성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로 신라석탑의 기본형을 잃지 않고 있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는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구성하였으며,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1층은 5단인데 비해 2층부터는 4단으로 간략화되어, 양식상 만들어진 시대가 통일신라 후기로 내려옴을 알 수 있다.

1955년 해체, 수리할 때 4층 지붕돌 윗면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수리를 하여 일부 석재를 보완하였다. 광주 전남지방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5층석탑 가운데서도 우수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출처 - 문화재청

광주 학생운동 발상지(전남여고, 광주제일고) / 보물 제110호
축적된 민족의식과 독립의지의 적극적인 표출, 일제의 탄압과 착취, 차별 교육에 대항한 민족운동의 발상지

위치 - 광주 북구 독립로 225, 외(누문동)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하였던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부지의 일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발적인 한·일 학생간의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축적된 민족의식과 독립의지의 적극적인 표출이며, 일제의 탄압과 착취, 차별교육에 대항한 민족운동이다. 광주에서 항일 시위를 전개한 후 전국의 194개 학교 54,0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여 일제를 놀라게 한 사건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태동은 광주공립고등보통하교, 광주공립농업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학생들이 "조선민족을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성진회, 독서회, 소녀회 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체들은 동료 학생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켰고, 일제에 항거하여 몇차례의 동맹휴학을 강행하면서 단결력을 키웠다.

이러한 독립의식과 단결력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한 조선여학생희롱사건이 발단이 되어 11월 3일의 항일시위를 전개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지역별 문화유산 및 명소

목포, 21일차 (완주식)

목포 - 세발낙지, 자연사 박물관, 갓바위, 김대중 노벨 평화 기념관, 자유시장(남진야시장), 목포 문학관, 평화광장 춤추는 분수, 갈치

목포 갓바위 / 천연기념물 제500호

위치 - 전남 목포시 용해동 86-24번지 인접해역

목포 갓바위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의 결과로 형성된 풍화혈(風化穴; tafoni)로서 삿갓을 쓴 사람의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풍화혈은 노출암괴에서 수분이 암석내부로 쉽게 스며드는 부위(균열 등)에 발달하며, 스며든 수분의 부피변화로 야기되는 물리적 압력에 의해 암석을 구성하는 물질이 보다 쉽게 입상(粒狀)으로 떨어져 나오는데, 일단 풍화혈이 생성되기 시작하면 이곳은 햇빛에 가려져 더욱 많은 습기가 모여 빠른 속도로 풍화되면서 풍화혈은 암석 내부로 확대된다.

목포해안 갓바위는 인위적 요인이 전혀 작용하지 않고 해역의 풍화환경에서 자연적인 과정으로 빚어진 풍화혈 상태의 자연 조각품이며 다른 지역 풍화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 을 가지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목포시사 / 시도기념물 제21호
문학에 뛰어난 선비들이 계절에 따라 자연과 시를 융화시켰던 풍류의 장소

위치 - 전남 목포시 유달로 165 (죽교동)

시사는 서로 뜻이 통하는 문학에 뛰어난 선비들이 계절에 따라 자연과 시를 융화시켰던 풍류의 장소이다. 목포시사는 한말의 대학자인 정만조가 1907년에 세운 건물로 전국 각처에서 200여명이 해마다 봄, 가을 2회에 걸쳐 백일장을 개최하여 한시(漢詩)의 명맥을 오늘날까지 이어 오는 유래 깊은 시사이다.

정만조는 고종 26년(1889)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의, 승지를 거쳐 내부참의, 규장각부제학 등을 지냈다. 광무년간 정변시 진도에 유배되어 10여년 간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이 당시 문학, 서예 등을 가르쳐 많은 인사를 배출하였고, 목포시사를 세워 퇴폐한 학문의 기풍을 바로잡아 지방 문화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옆면 1칸 반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시사 안에는 정만조의 문집을 비롯하여 한말의 전적, 한시 현판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목포 고하도 이충무공기념비 / 시도유형문화재 제39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전략을 기리고 있는 기념비

위치 - 전남 목포시 고하도길 175(달동)

목포시에 속한 고하도(高下島)라는 섬에 서 있는 비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전략을 기리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장군은 승리를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량을 저장해두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고, 군사적 요충지인 이 섬에다 양식을 비축하여 두었다 한다.

비를 세우는 공사는 통제사 오중주에 의해 시작되어, 경종 2년(1722) 8월에 공의 5대손인 이봉상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남구만이 비문을 짓고, 조태구가 글씨를 썼으며, 지금은 커다란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